* 2020학년도 여름학기 서울대학교 교양수업 <인간과 종교> 레포트로 작성했던 글입니다. 영화의 내용이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론
밀양(密陽)이 말하는 것
지금까지 영화 <밀양>의 주인공 신애가 고통을 겪고 종교에 의지했다가 신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과정을 신정론과 인정론의 눈으로 함께 읽었다. 그렇다면 다시 영화로 돌아와보자. 영화의 제목인 ‘밀양(密陽)’은 ‘비밀의 햇볕’을 의미한다. <밀양>의 영어 제목 역시 ‘Secret Sunshine’이다.
그렇다면 ‘밀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약사 아내에 의하면 햇볕 한 조각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햇빛처럼, 가시적인 것 너머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역에 인간이 추구해야할 진짜 삶이 있고 새로운 생명,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의 죽음 이후, 햇볕을 보고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던 신애는 회심 체험 이후 종교에 몸담고 신을 통해 그 보이지 않는 햇볕을 추구한다. 그렇게 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信愛)으로 지내던 신애는 ‘신의 뜻’이라며 아들을 잃은 고통을 감내하지만, 범인이 신으로부터 대신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아들을 잃은 고통에 더해 신에게 배신당한 고통까지 겪으며 다시 괴로워한다.
결국 마지막에 신애는 신이 아닌 인간 종찬이 들어주는 거울에 의지하여 자신의 머리카락을 스스로 자른다. 종찬은 속물적이고, 교회는 다니지만 신을 진정으로 믿지도 않는다. 그런 ‘인간’ 그 자체인 종찬이 신애 곁을 지키던 또 하나의 ‘비밀의 햇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종찬은 묵묵히 거울을 들어줄 뿐, 신애의 머리를 대신 잘라주지 않는다. 즉, 신애는 스스로 머리를 자르며 주체적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종찬은 이를 묵묵히 도와줌으로써 앞으로도 단지 옆에 있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때 종찬을 비춘 후 땅 위에 드리운 햇볕을 비추는 카메라는 이렇게 우리 곁에 있는 속물적이고 평범한 인간이 곧 우리의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구원임을 암시한다.
한편, 신애가 고통을 받고, 신을 믿고, 신으로부터 배신당하는 일련의 과정은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모두 인간의 문제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현상밖에 없으며, 신정론과 인정론 모두 인간의 생각, 인간의 판단이다. 신애가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범인을 만난 이후 신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묻는 것 역시 신애의 생각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신의 뜻은, 신이 만약 있다면, 직접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밀양(密陽)’, 곧 비밀의 햇볕처럼 은밀하게 숨어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는 인간에게 달려있다. 결국 영화 <밀양>은 아무리 보이지 않는 하늘 너머의 것을 좇는다 하더라도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의 문제임을 말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밀양>은 가장 중요한 것은 실존하는 인간의 주체성이며, 인간을 구원해줄 존재는 곧 나와 함께 살아 숨쉬는 인간임을 깨우쳐 주며 막을 내린다.
#참고문헌
민순의, 영화 《밀양》이 제기하는 인간학적 성찰 -악의 현실과 구원의 방향성을 중심으로. 종교와 문화, 13,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2007
박명진, [영화] 유괴의 사회학, 또는 죄와 벌에 대한 성찰. 황해문화, 57, 2007. 381-387.
이창동∙허문영, 이창동 감독∙영화평론가 허문영 대담 – 유괴는 이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고통이다, 씨네21, 2007. 5. 15., http://www.cine21.com/do/article/article/typeDispatcher?mag_id=46374
홍성록, ‘밀양’ 이창동 감독 “종교 아닌 인간 다룬 영화”, 한겨레, 2007.05.25.,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211666.html#csidxb130b6395c89eaeb3c91f0f3d1256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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