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𝕄𝕠𝕧𝕚𝕖

<밀양>, 악과 고통의 문제에 대한 인간의 주체성 (2)

* 2020학년도 여름학기 서울대학교 교양수업 <인간과 종교> 레포트로 작성했던 글입니다. 영화의 내용이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론(1)

1. 고통받는 인간과 신의 만남

1.1. 회심체험(born-again)

 영화 <밀양>에서 바라보는 악과 고통의 문제에는 신애(전도연)라는 인물이 중심이 된다. 신애는 남편의 외도와 남편의 죽음을 겪은 뒤, 남편의 고향이었던 밀양에서 살고자 아들 준과 함께 내려온다. 지인 한 명 없이 밀양으로 내려온 신애는 피아노 학원을 열고, 떡을 돌리며 동네 사람들과 안면을 트고, 아들을 웅변 학원에 보내며 마을에서 차츰 자리를 잡아 나간다. 아들 준은 말이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엄마와 함께 떡을 돌리고 아빠를 그리워하며 아빠의 코골이를 흉내 낼 뿐만 아니라, 엄마에게 숨바꼭질 장난을 치는 아이다운 발랄한 면모도 보여준다. 그러나 이내 준은 신애의 돈을 노렸던 웅변학원의 원장에게 유괴, 살해당한다. 남편의 죽음에 이어 아들의 죽음까지 겪게 된 신애는 가족을 전부 잃고 홀로 남은 인간으로서, 극심한 고통을 자기 혼자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위치에 선다.

 신애는 원래 신을 믿지 않았다. 영화 초반부, 신애는 피아노 학원 맞은편 약국의 약사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약국을 방문하고, 그 곳에서 하나님 말씀이 담겨 있는선물을 주는 약사에게 자신은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답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커녕 눈에 보이는 것도 다 믿지 않는다는 회의적인 말을 덧붙인다. 그러나 이내 아들의 죽음과 그로 인한 극심한 고통을 마주한 신애는 약사 아내로부터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기도회를 소개받는다. 그때까지도 신애는 햇볕 한 조각에도 신의 뜻이 숨어있다는 약사 아내의 말에 여기 뭐가 있어요? 그냥 햇빛이에요 햇빛이라 대답하며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러나 신애가 아들의 사망신고서를 제출하고 고통에 빠져 있을 때, 신애는 우연히 해당 기도회의 현수막을 발견하고 그 길로 교회를 방문하여 기도회에 참여한다. 원래 신을 믿지 않던 인물이었으므로, 신애가 그 기도회를 방문한 이유는 어떤 종교적 이유보다는 단순한 위로, 위안을 얻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도회에서 신애는 격하게 흐느껴 울며 역동적인 종교 체험, 즉 신을 만나는 일종의 누미노제 체험을 경험한다. 이렇게 신애는 기독교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회심 체험(born-again)을 하고, 그 길로 신애는 기독교인으로 새롭게 거듭난다. 신애는 다른 종교인들 앞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말, 전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확실히 알았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의지할 곳 없는 홀로 선 인간에서 신에게 의지하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신애는 종교에 의지함으로써 자신이 마주한 고통에 대응하고 자신에게 남겨진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밀양> 포스터. 신애의 표정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1.2. 신정론(Theodicy, 神正論)

신을 믿기 이전의 신애는 만약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크시다면요, 그렇다면 우리 준이가 왜 그렇게 처참하게 죽게 내버려 두셨어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표면적으로는 자신에게 기도회를 권유하는 약사 아내에 질문을 던진 것이지만, 이 질문은 신애가 겪는 고통에 대한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물음이다. 신애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인간의 논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 끊임없이 근원적인 를 묻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약사 아내는 세상 모든 일에는 주님의 뜻이 있다고 대답한다. 이러한 약사 아내의 대답은 다양한 신정론 중 '신비의 신정론'을 보여준다. 신비의 신정론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신의 뜻을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신의 궁극적 정의를 믿으며 신앙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대답을 들을 당시, 아직 신을 믿지 않던 신애는 약사 아내의 답변을 거부한다.

그러나 기도회에서의 회심 체험 이후, 신애는 신을 받아들이며 신정론 역시 함께 받아들이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이때 신애가 받아들인 신정론은 약사 아내와 같은 신비의 신정론으로, 신애는 저한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믿게 됐어요라고 말하며 아팠던 가슴이 평안을 얻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신애는 신에게 의지하고, 자신이 마주한 고통의 이유가 신의 뜻임을 받아들인다. , 고통의 이유를 발견하여 고통에 감내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신정론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면, 신정론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구사한 라이프니츠는 악은 더 큰 신적 질서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이레나이우스에게로 이어져, 악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첫 번째 악은 물리적 악으로, 인간의 자질 함양을 위해 신에 의해 의도적으로 마련된 것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그 반대에 서있는 선을 인식하게 한다. 또 다른 악인 도덕적 악은 신의 자녀가 되는 과정, 즉 고난과 시험의 상황에서 도덕적 선택을 내리지 못한 자들의 상태이다. 따라서 선과 악은 현실에서 섞일 수밖에 없으며, 악은 인간의 완성에 필수불가결하다. 따라서 신애가 맞이하는 아들 준의 죽음이라는 고통은 신애가 신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물리적 악이며, 범인은 범죄를 저질러 악으로 떨어지는 도덕적 악에 처한다. 그러나 그런 범인 역시 준의 죽음으로 종국에는 신을 알게 되고, 구원받는다.[1] 이러한 아이러니는 신애가 신을 만나기 전보다 더 큰 수렁으로 빠지는 계기가 된다.

 


[1] 민순의, 영화 《밀양》이 제기하는 인간학적 성찰 -악의 현실과 구원의 방향성을 중심으로. 종교와 문화, 13,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2007. p. 22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