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의 소외되는 사람들 - 폐지 줍는 어르신
예전에 혼자 써둔 글인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이라 올려봅니다. 현재(5월 18일) 상황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폐지 값과 마스크
30원. 폐지 1kg 당 30원이다. 지난 달에 고물상을 방문해서 확인했을 때보다 10원이나 더 떨어졌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리어카 한가득 폐지를 싣고 오면 약 100kg이 조금 넘는다. 리어카 무게까지 합하면 어르신들이 끄는 무게는 보통 150kg을 훌쩍 넘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폐지는 고물상에서 약 3000원으로 환산된다.
3000원. 공적 마스크의 가격이다. 꼭두새벽부터 온종일 거리를 돌며 폐지를 수집하며 3000원, 정말 많아야 만원 남짓 - 이만큼 벌기 위해서는 하루에 12시간은 돌아다니셔야 한다 - 을 버는 어르신들께 공적 마스크는 사치다. 고물상을 방문했을 때, 어르신들 대부분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계시거나, 다 떨어져 너덜너덜해진 일회용 마스크를 쓰고 계셨다. 어르신들께서는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마스크를 구하기도 힘들고, 주변에 약국이 있어도 너무 비싸다고 하신다. 하루 3000원을 버는 어르신들께 마스크 2장은 큰 지출이다.
그뿐만 아니라, 약국 앞에 길게 늘어선 줄도 어르신들이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마스크가 금세 품절 되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줄을 서면서까지 마스크를 구할 바에는 차라리 그 시간에 폐지를 줍는 것이 낫다고 여기시기 때문이다. 또한 요즘 누구나 들고다니는 스마트폰을 갖고 계신 분들도 거의 없어, 어느 약국에서 공적마스크를 파는지, 재고는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다 보니 마스크 쓰기를 아예 포기하신 분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마스크가 없다고 해서 폐지 줍는 일을 중단할 수는 없다. 폐지 수거가 거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거르면 그나마 벌던 돈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2. 코로나19로 드러나는 복지의 문제
코로나 19는 지병이 있고, 나이가 많은 노인들에게 특히나 더욱 위험하다고 한다. 대부분의 폐지 수거 어르신은 병원에 다니신다. 조금이나마 병원비를 보태려 폐지 수거 일을 시작하신 어르신들도 많다. 이런 어르신들께 코로나 19 감염 예방을 위한 ‘마스크 쓰기’나 ‘외출 자제’, ‘사회적 거리 두기’는 남의 일이다. 코로나 19에 감염되면 그 누구보다도 위험할 분들이, 마스크 없이 매일 거리로 나선다. 아니, ‘살기 위해서’ 나설 수밖에 없다.
어르신들께 돌봄을 제공해야 할 복지관도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몇 주 전 함께 고물상을 방문했던 복지사님은 우리가 고물상에 계신 어르신들께 마스크를 나눠드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에게 마스크를 어떻게 구하셨냐고 물으셨다. 팀장님은 요즘 복지관에서도 마스크를 구하기가 힘들어서 어르신들께 드릴 수 있는 마스크가 없다고 덧붙이셨다. 그리고 지금은 해당 복지관을 포함한 대부분의 복지시설이 무기한 휴관 상태에 들어갔다. 코로나 19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다. 평소와 같은 자택 방문, 식사 제공 등도 모두 중단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제는 어르신들께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도 추측만 해볼 뿐 직접 찾아뵈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다름 아닌 어르신들이다.
전염병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 특히 거리에서 폐지를 주우며 살아가는 저소득층 노인들을 더욱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얼마 전 한 기사에서 코로나 19 시국에도 불구하고 생계 유지 노동을 이어가는 이유는 ‘코로나 19라는 불확실한 위험보다 빈곤이라는 확실한 위험이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라는 글을 보았다. 이는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상황을 거의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이렇게 폐지 수거 어르신들께 코로나 19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빈곤과 중첩되며 그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서 지역별 복지관을 중심으로, 단순히 ‘무기한 휴관’이 아닌 보다 실질적인 대책을 찾아볼 필요가 있으며, 기존 제공되던 돌봄 서비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저는 소셜벤처 '끌림' 활동을 통해 폐지 수거 어르신들께 관심을 갖게 되었고, 추후 기회가 된다면 끌림 활동과 관련된 글도 남겨볼 생각입니다. 끌림은 리어카 광고를 통해 폐지 수거 어르신들께 매달 광고 수익을 돌려드리는 소셜벤처로, 매달 고물상 방문을 통해 어르신들과 소통하고 있으며 지역구별 복지관과도 협력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약 13개월의 활동 후 활동 기간이 지나 끌림에서 나온 상태입니다.